조현병, 마음의 균형이 흔들릴 때
― 정의부터 치료까지 한 번에 정리하는 조현병 이해 가이드
1. 조현병이란 무엇인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질 때
조현병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심각한 정신질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현실 세계와 머릿속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삶의 많은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말이 나를 향한 공격처럼 들리고, 텔레비전 속 장면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 이것이 바로 조현병 환자들이 겪는 일상의 일면입니다.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유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부터 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지만, 이 용어는 '인격이 나뉘는 병', '다중인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낙인(stigma)을 초래했습니다. 조현병은 인격이 분열되는 질환이 아니라, 뇌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사고(思考), 감정, 지각, 행동에 장애가 생기는 정신질환입니다.
세계적으로 전체 인구의 약 1%가 조현병을 앓고 있으며, 남녀 모두에게 발병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10대 후반, 여성은 30대 초반에 발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우울감,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 비특이적인 증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학업 부진이나 사회적 위축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로 인해 치료가 늦어지거나, 전혀 치료받지 못한 채 병이 심화되기도 합니다.
조현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 그리고 가족 및 사회의 지지가 있다면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여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현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현실은 환자와 가족 모두를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현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차별과 편견 없이 접근해야 합니다.
2. 조현병의 주요 증상
마음속 신호,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한다
조현병의 증상은 단일하지 않으며, 개인마다 양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세 가지 주요 범주로 구분됩니다. 양성 증상, 음성 증상, 인지 증상입니다. 각각의 증상은 뇌의 기능 이상과 관련되어 있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합니다.
🔷 양성 증상 (Positive Symptoms)
‘양성’이란 기존에 없던 것이 ‘추가된’ 증상을 말합니다. 현실을 왜곡하여 인식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며, 일반인이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증상들입니다.
▪ 망상(Delusions)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을 강하게 확신하는 상태입니다.
- 피해 망상: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믿음 (예: 경찰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 관계 망상: TV 속 인물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함
- 과대 망상: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거나 세계를 구할 운명이라고 믿음
▪ 환각(Hallucinations)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제처럼 지각하는 현상입니다.
- 가장 흔한 형태는 환청입니다.
- 예: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명령하는 목소리가 들림.
- 환각은 뇌의 감각 영역이 자극을 받아 발생하며, 환자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 와해된 사고(Disorganized Thinking)
생각의 흐름이 비논리적이거나 급격히 바뀌는 상태입니다.
- 말이 중간에 끊기거나, 주제를 벗어나 엉뚱한 말을 함.
- 때로는 ‘신어(neologism)’라 하여, 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 이상행동(Disorganized or Catatonic Behavior)
목적 없는 행동, 부적절한 감정 표현, 운동기능의 이상 등이 포함됩니다.
- 길거리에서 옷을 벗거나, 표정이 전혀 없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긴장증)
🔷 음성 증상 (Negative Symptoms)
양성 증상과는 반대로, 정서적·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입니다. 조현병 환자가 "게으르다",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받는 주요 원인입니다.
▪ 감정 둔마(Flat Affect)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감정 표현이 부족합니다. 기쁜 일에도 반응이 없을 수 있습니다.
▪ 무언증(Alogia)
말수가 줄고, 질문에도 단답형으로 응답하거나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 무의욕(Avolition)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활동(청소, 샤워, 식사 등)에 대한 의욕이 떨어집니다.
▪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
가족이나 친구와의 교류를 단절하고, 고립된 생활을 선호하게 됩니다.
🔷 인지 증상 (Cognitive Symptoms)
조현병은 단순히 감정이나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정보 처리 능력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 주의 집중력 저하
- 기억력 감퇴
- 추론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저하
이러한 인지 기능의 저하는 직업 유지나 학업 수행에 큰 장애가 됩니다. 종종 ADHD나 학습장애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조현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
왜 생기고,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
조현병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인성 질환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신뢰받는 설명은 스트레스-취약성 모델(Stress-Vulnerability Model)입니다. 유전적 또는 뇌 구조적 취약성이 있는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발병 위험이 증가합니다.
🔷 조현병의 원인
1) 유전적 요인
조현병은 가족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부모 중 한 명이 조현병이면 자녀의 발병 확률은 약 10%
-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조현병일 경우, 다른 쌍둥이의 발병 확률은 50% 이상
하지만 유전적 소인이 있다 해도 반드시 발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2) 뇌 구조 및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MRI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의 전두엽, 측두엽, 해마 등에서 구조적 위축이 발견됨
- 도파민 과잉 활동은 망상 및 환각 증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 글루탐산, 세로토닌 등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이상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3) 환경적 요인
- 산모의 임신 중 감염이나 영양 부족
- 출산 과정에서의 산소 결핍
- 아동기의 정서적 학대, 트라우마
- 청소년기 또는 성인기의 사회적 고립, 과도한 스트레스
이러한 요인들은 뇌 발달에 영향을 주며 조현병의 위험 요인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 조현병의 치료
조현병은 단기 치료로 완치되는 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꾸준한 치료와 재활을 통해 증상을 관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1) 약물 치료 (Antipsychotic Medications)
가장 중요한 치료는 항정신병 약물 복용입니다.
● 1세대 약물: 할로페리돌, 클로르프로마진 등
- 도파민 수용체를 강하게 차단
- 효과는 강력하나 추체외로계 부작용(근육강직, 진전 등)이 많음
● 2세대 약물: 리스페리돈, 올란자핀, 퀘티아핀, 아리피프라졸 등
- 도파민뿐 아니라 세로토닌도 조절하여 부작용이 적고 음성 증상에도 효과
최근에는 장기지속형 주사제(LAI)도 활용되며, 약 복용을 깜빡하거나 거부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2) 정신사회적 치료 (Psychosocial Interventions)
약물만으로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심리치료, 가족치료, 재활 프로그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 인지행동치료(CBT): 망상이나 왜곡된 사고를 논리적으로 교정
- 가족교육 및 상담: 가족들이 질병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줌
- 사회기술훈련(SST): 직업능력, 대인관계 회복을 위한 기술 훈련
- 직업 재활: 보호작업장, 직업훈련센터, 사회복귀시설 등을 통한 자립 지원
조현병은 관리 가능한 ‘삶의 일부’입니다
조현병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질병일 수는 있지만, 절망이나 낙인이 되어선 안 됩니다. 치료는 어렵지만 가능하며, 증상이 조절되면 학교, 직장, 가족 등 일상의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와 인내, 그리고 꾸준한 치료입니다.
누구나 우울해질 수 있고, 불안에 시달릴 수 있으며, 때때로 현실감각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도 그저 인간적인 고통을 겪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낙인이 아니라 공감과 지원, 그리고 정보에 기반한 접근이 지금 이 사회에 필요한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