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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성 기억상실: 상처받은 기억의 문을 닫는 마음의 작동 원리

by apwndi 2025. 4. 26.

해리성 기억상실: 상처받은 기억의 문을 닫는 마음의 작동 원리

해리성 기억상실: 상처받은 기억의 문을 닫는 마음의 작동 원리
해리성 기억상실: 상처받은 기억의 문을 닫는 마음의 작동 원리

1. 해리성 기억상실이란 무엇인가?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은 심리적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뇌가 스스로 특정 기억을 차단하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정신적 현상입니다. 이 기억상실은 단순히 "깜빡했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건망증이나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주로 개인의 삶에 깊은 충격을 준 사건, 예를 들면 심각한 학대, 전쟁, 사고, 범죄 피해 등의 기억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잃어버린 기억은 개인의 자전적 기억, 특히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부분을 중심으로 발생합니다.

 

해리란 무엇인가?

여기서 "해리(dissociation)"란, 일반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할 생각, 기억, 감정, 정체성 등이 서로 분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보통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벼운 해리 상태를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멍하니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걸 알아채지 못한 경험, 책을 읽다 생각에 빠져 내용을 놓친 경험이 해리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하며, 일상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기준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서는 다음과 같은 진단 기준을 제시합니다

  • 외상이나 스트레스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개인적 정보를 기억하지 못함
  • 단순한 건망증으로 설명할 수 없음
  • 기억상실이 개인의 사회적, 직업적,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함
  • 약물, 신경학적 질병(예: 뇌손상) 등 다른 의학적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음

해리성 기억상실과 다른 기억 문제의 차이

  • 단순 건망증은 대개 나이가 들면서 점진적으로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 뇌손상에 의한 기억상실은 대개 특정 패턴(예: 최근 기억 상실, 오래된 기억 보존)으로 나타나며, MRI 등 신경학적 검사로 확인 가능합니다.
  • 반면, 해리성 기억상실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특정 사건이나 기간과 관련된 선택적인 기억 상실이 특징입니다.

 

2. 해리성 기억상실의 주요 원인


해리성 기억상실은 주로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험을 했을 때 발생합니다. 이때 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기억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외상성 경험(Traumatic Experience)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특히,

  • 심각한 신체적 폭력
  • 성적 학대
  • 전쟁이나 자연재해
  • 심각한 교통사고
  • 범죄 피해(납치, 폭행 등)

이러한 경험은 감정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기억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뇌가 '판단'하게 만듭니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방치

어린 시절에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당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 형성된 해리 기제는 성인기에도 해리성 기억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서적 충격

반드시 신체적 외상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이혼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사망

굴욕적이거나 수치스러운 사건 이와 같은 강렬한 정서적 충격도 해리성 기억상실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

군인, 전쟁 지역 거주자, 대형 사고 생존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면서 해리성 기억상실을 겪을 수 있습니다.

 

특정 성격적 요인

모든 외상 경험자가 해리성 기억상실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하고 몰입력이 높은 사람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적 대응 방식을 학습한 사람 이런 개인들이 상대적으로 해리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해리성 기억상실의 종류


해리성 기억상실은 한 가지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몇 가지 하위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국소성 기억상실(Localized Amnesia)

특정 시간 동안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사고 당시의 기억은 물론 사고 직후 몇 시간 동안의 기억도 전혀 떠올릴 수 없습니다.

  • 특징: 외상 직후 일정 시간대의 기억이 모두 소실
  • 가장 흔한 형태
  • 주로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의 일환으로 나타남

선택적 기억상실(Selective Amnesia)

특정 사건이나 사건의 일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학대 피해자는 학대를 당한 사실은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 세부 내용이나 학대자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특징: 부분적 기억 상실
  •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부분만 차단
  • 때때로 왜곡된 기억을 형성하기도 함

전반적 기억상실(Generalized Amnesia)

자신의 생애 전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극히 드물지만, 매우 심각한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이름, 가족, 과거 경력까지 모두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 특징: 자기 정체성과 과거 기억을 모두 상실
  • 극심한 불안, 혼란, 무기력감 동반
  • 종종 병원이나 낯선 장소에서 발견되는 경우 있음

지속성 기억상실(Continuous Amnesia)

현재까지 이어지는 특정 시점 이후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잃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고 이후로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 특징: 새로운 기억 형성에 장애
  • 일상생활 적응이 매우 어려움
  • 다른 신경학적 손상(예: 뇌손상)과 감별이 필요

체계적 기억상실(Systematized Amnesia)

특정 인물, 장소, 사건에 관련된 기억만 잃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학대를 저지른 특정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기억만 완전히 잃을 수 있습니다.

  • 특징: 기억상실이 매우 구체적이고 주제 중심적
  • 방어기제가 정교하게 작동한 결과로 이해됨

 

잃어버린 기억은 보호막이자 짐일 수 있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뇌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자, 동시에 큰 상처의 흔적입니다.
기억을 잃는 것은 고통을 피하는 방법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체성 혼란, 관계 어려움,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2차적인 정신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리성 기억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난 없는 이해, 전문적인 치료 지원, 그리고 안전한 환경 제공입니다.

기억이 천천히 돌아올 때 그 과정을 섬세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회복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