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수면증(Hypersomnia) “잠이 보약이라는데… 왜 이렇게 자도 피곤할까요?”
과다수면증, 그냥 피곤한 게 아닙니다
누구나 하루쯤은 “왜 이렇게 졸리지?”, “아무리 자도 피곤해”라고 느낀 적이 있을 겁니다. 특히 스트레스나 피로가 누적되면 수면 시간이 길어지고 낮잠도 늘어나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과다수면증(Hypersomnia)’이라는 수면장애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과다수면증이란 무엇인지, 어떤 증상과 원인이 있으며,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는지를 3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1. 과다수면증이란? 너무 많이 자는 것도 병입니다
과다수면증은 단순히 잠이 많은 것과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밤에 충분히 잔 이후에도 낮에 과도한 졸림이 반복되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수면장애를 말합니다. ‘기면증’과 혼동되는 경우도 많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다수면증의 정의
- 야간 수면 시간이 7~9시간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낮에도 자주 졸거나 잠들어버리는 상태
- 1일 총 수면 시간이 9시간을 넘는 경우, 그리고 낮잠이 반복적으로 필요할 정도의 졸림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과다수면증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 이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교육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다수면증의 종류
1. 특발성 과다수면증(Primary Hypersomnia)
- 뚜렷한 원인이 없이 지속적으로 졸림이 나타남
-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낮에도 졸림이 극심하며 낮잠 후에도 개운하지 않음
- 대부분 청소년기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발병
2. 이차성 과다수면증(Secondary Hypersomnia)
- 다른 질환의 결과로 발생
- 수면무호흡증, 파킨슨병, 우울증, 두부외상, 뇌염, 약물 복용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음
3. 주기성 과다수면증
- 대표적으로 ‘클라인-레빈 증후군(Kleine-Levin Syndrome)’이 있으며, 며칠에서 수 주에 걸쳐 수면, 식욕, 성욕이 급격히 증가하는 드문 질환입니다.
기면증과의 차이점은?
- 기면증은 렘수면 조절 이상으로 갑작스럽게 졸음이 쏟아지거나 수면마비, 탈력발작(근육이 풀려 쓰러지는 현상)이 함께 나타납니다.
- 반면, 과다수면증은 졸음은 많지만 이런 렘수면 관련 증상은 없으며, 낮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2. 이런 증상이라면 과다수면증을 의심하세요
“밤에 푹 잤는데도 계속 졸립다”는 말, 과다수면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를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오해하기 쉬워, 많은 환자들이 외로움과 좌절감을 겪습니다.
주요 증상
1. 지나치게 긴 수면 시간
- 하루 9시간 이상 자고도 피곤함
- 주말이나 휴일에는 12시간 이상 수면
2. 낮 동안의 졸림
- 직장, 학교, 회의, 식사 중에도 졸음
- 낮잠이 반복되며, 1~2시간 자도 개운하지 않음
3. 기상 곤란
- 아침에 알람을 여러 번 맞춰도 일어나기 힘듦
- 수면관성(Sleep Inertia): 잠에서 깬 후에도 한참 동안 멍하고 몸이 무거움
4. 인지기능 저하
- 집중력 및 기억력 감퇴
- 일이나 공부에 의욕 상실
5. 기분 변화
- 우울감, 짜증, 무기력
- 감정 기복이 커짐
실제 사례
대학생 B씨(22세)는 매일 10시간 이상 자는데도 강의 중에 꾸벅꾸벅 졸고, 시험공부는커녕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부모는 “게을러서 그렇다”고 했지만, 결국 수면센터에서 특발성 과다수면증 진단을 받고 치료 중입니다. 치료 후 다시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오해가 더 큰 문제
과다수면증 환자들은 “너는 맨날 자잖아”, “그냥 피곤한 거 아냐?” 같은 말을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는 신경학적 이상이나 뇌의 각성 시스템 문제로 인한 질병이며,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같은 낙인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3. 진단과 치료, 그리고 올바른 생활습관은?
과다수면증은 진단 자체가 까다롭습니다. 단순히 졸리다고 진단되는 것이 아니며, 정확한 검사와 배제를 통해야 진단이 가능합니다. 또한, 완치보다는 증상 조절과 관리가 중심이 됩니다.
진단 과정
1. 수면다원검사(Polysomnography, PSG)
- 수면 중 뇌파, 안구 움직임, 근전도, 호흡 등 종합적인 신체 반응을 측정
-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 다른 수면장애를 배제하는 데 필수
2. 다중 수면 잠복기 검사(MSLT)
- 다음 날 낮 동안 일정 간격으로 5번 낮잠 기회를 주고, 얼마나 빨리 잠드는지 측정
- 평균 수면 시작 시간이 8분 이하면 과다수면으로 판단
- 렘수면이 낮잠 중 나타나는 경우 기면증으로 구분 가능
3. 설문지 및 수면일지
- 에필워스 졸림척도(ESS)와 같은 설문지
- 1~2주간의 수면 패턴을 기록하는 수면일지 활용
치료 방법
1. 약물 치료
● 중추신경계 각성제
- 모다피닐(Modafinil), 아몰다피닐 등은 낮 시간 졸림을 억제하는 데 사용
- 기면증과 과다수면증 모두에 효과 있음
● 항우울제, 도파민 작용제
- 이차성 과다수면증이나 기분장애 동반 시 함께 처방
⚠ 약물은 반드시 수면장애 전문의의 진단을 바탕으로 사용해야 하며, 자가 복용은 위험합니다.
2. 비약물 치료
● 수면 위생 개선
- 일정한 기상/취침 시간 유지
- 낮잠은 하루 30분 이내로 제한
- 잠들기 전 전자기기 사용 제한
● 인지행동치료(CBT)
- 수면 관련 불안감, 무기력감 완화에 도움
● 체중 조절 및 식단 관리
- 비만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므로 체중 관리가 중요
3. 근본 질환 치료
- 수면무호흡증, 우울증, 뇌 질환 등 동반 질환이 원인이라면, 해당 질환 치료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잠이 너무 많다’는 것도 진짜 병일 수 있습니다
과다수면증은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수면질환입니다. 게으름이나 나약함으로 오해받기 쉬워 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회적 고립감, 우울감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는 의학적으로 정의된 질환이며, 약물과 비약물 치료를 통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상태를 무시하거나 탓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잠이 많다”는 말 속에 숨겨진 질병을 당신과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도 병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야 할 때입니다.
지나친 수면도 우리 몸의 이상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하루 10시간을 자도 피곤하다면, 더 이상 참고 넘기지 말고 전문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건강한 일상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