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의 경계선: 1회성 발작 vs 만성 뇌전증 그리고 난치성 뇌전증의 이해
1. 1회성 발작과 만성 뇌전증의 구분 기준: 단순한 발작일까, 만성 질환일까?
🌷 발작과 뇌전증의 차이점
많은 사람들이 ‘발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곧바로 ‘뇌전증’(간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모든 발작이 뇌전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작은 뇌에서의 일시적인 전기적 이상 활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신경학적 증상이며,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뇌전증’은 반복적인 발작이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상태를 말하며, 단 한 번의 발작만으로 뇌전증으로 진단되지는 않습니다.
1회성 발작(Epileptic Seizure)
1회성 발작은 뇌전증 진단의 전 단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특정한 외부 요인이나 일시적 뇌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며,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 고열로 인한 열성경련 (특히 영유아에서)
- 급성 뇌손상 (외상, 뇌졸중, 감염 등)
- 저혈당, 저나트륨혈증, 알코올 금단 등 대사 이상
- 수면 부족, 극심한 스트레스 등
이러한 1회성 발작은 원인이 해결되면 재발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항경련제를 평생 복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단 시 고려사항
- 의료진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고려하여 1회성 발작과 뇌전증을 구분합니다:
발작 유발 인자 유무
- 외부 원인이 확실할 경우 ‘증상성 발작’으로 분류하며, 뇌전증으로 진단하지 않습니다.
뇌파(EEG) 이상 여부
- 발작 후 시행한 EEG에서 간질성 이상파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 뇌전증 가능성은 낮습니다.
뇌 영상 검사
- MRI나 CT에서 뇌의 구조적 이상이 없고, 뇌졸중이나 종양 같은 병변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뇌전증보다는 일시적 발작으로 봅니다.
만성 뇌전증(Epilepsy)의 정의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간질연맹(ILAE)에 따르면,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할 경우 ‘뇌전증’으로 진단됩니다:
- 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의 비유발성 발작이 발생한 경우
- 단 1회의 발작이라 하더라도, 향후 발작 재발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예: MRI에서 병변 발견, EEG 이상 등)
- 특정한 뇌전증 증후군으로 진단된 경우 (예: 유아연축증,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등)
이와 같이 단순히 발작 횟수가 아니라 재발 가능성과 의학적 소견이 뇌전증 진단의 핵심입니다.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는?
다음의 상황에서는 단 한 번의 발작이어도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 뇌 영상 검사에서 병리적 병변이 보이는 경우
- EEG에서 반복적인 이상파가 발견된 경우
-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며 원인 불명의 발작인 경우
2. 난치성 뇌전증이란 무엇인가?
🌿 정의와 분류
난치성 뇌전증(약물 난치성 뇌전증, 약물 저항성 뇌전증, Refractory Epilepsy)이란 항경련제를 2종 이상 적절한 용량과 기간 동안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작이 계속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국제간질연맹(ILAE)의 공식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두 가지 이상의 적절하게 선택되고 용량이 조절된 항경련제를 사용한 이후에도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경우”
이때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소 1년 이상 발작이 지속
- 월 1회 이상의 발작이 반복
-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의 빈도나 강도
난치성 뇌전증의 유병률
전체 뇌전증 환자의 약 30%가 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전합니다. 약물 치료에 효과가 없는 이들 환자는 다른 치료 방법이 필요하며, 단순한 약 처방만으로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난치성 뇌전증의 원인
선천성 뇌 기형
- 소아기 뇌전증에서 난치성으로 진행되는 경우 대부분은 선천적인 뇌 구조 이상과 관련 있습니다.
뇌 손상 후유증
- 외상, 뇌졸중, 감염 후에 생기는 흉터(경화) 부위가 발작을 유발하는 경우 약물로 조절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
- 일부 유전 질환이나 대사 질환은 약물 반응이 낮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저항성이 커집니다.
발작 유발 영역이 넓거나 복합적인 경우
- 단일 병변이 아닌 여러 부위에서 동시에 전기적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 약물로 조절이 어렵습니다.
🌿 난치성 뇌전증의 예시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ennox-Gastaut Syndrome)
- 소아기 발병, 다양한 발작 형태, 지능 저하 동반, 약물 반응 낮음
드라벳 증후군(Dravet Syndrome)
- 영아기 발병, 고열성 경련 후 시작, 유전자 이상 동반, 약물 저항성
측두엽 뇌전증(Temporal Lobe Epilepsy)
- 성인기 발병, 부분 발작, 약물 반응 낮은 대표적 국소 뇌전증
3. 난치성 뇌전증의 치료 방법과 관리 전략
🌸 수술적 치료: 뇌전증 수술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 수술적 치료가 고려됩니다.
대표적인 수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병변 절제술: MRI에서 확인된 발작 유발 부위를 제거
- 측두엽 절제술: 측두엽의 발작 유발 부위를 절제 (측두엽 뇌전증에 효과적)
- 다중 피질 절제술(Multiple subpial transection): 기능을 유지하면서 발작 전파를 차단하는 수술
수술 성공률은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에서는 70~90%까지 발작이 소실되는 효과가 보고됩니다.
🌸 신경자극 치료
수술이 어렵거나 효과가 제한적인 경우, 비침습적 방법으로 신경을 자극하여 발작을 줄이는 치료가 있습니다.
미주신경 자극술(Vagus Nerve Stimulation, VNS)
- 경부에 삽입한 전극으로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발작 빈도를 감소시킵니다. 약 30~50% 발작 빈도 감소가 가능합니다.
심부뇌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 DBS)
- 대뇌의 중심부에 전극을 삽입하여 발작 활동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파킨슨병 치료에도 사용됩니다.
🌸 케톤식이요법(Ketogenic Diet)
특히 소아 난치성 뇌전증에 효과가 있는 식이요법입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단을 통해 케톤체 상태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뇌 신경 흥분성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성인을 위한 변형된 MCT 식이, 저혈당식 등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효과는 환자마다 다르지만, 약 30~50%의 환자에서 발작 빈도가 절반 이상 감소합니다.
🌸 약물 병합요법 및 신약 개발
기존 항경련제 외에도 다음과 같은 치료 접근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 새로운 항경련제: 라코사미드, 페람파넬, 브비가바트린 등
- 약물 병용 전략: 작용 기전이 다른 약물을 병용하여 시너지 효과 유도
- 개인 맞춤 약물 치료: 유전자 검사 기반의 치료 방향 설정
🌸 일상생활에서의 관리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치료뿐 아니라 생활 관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 발작 유발 요인 피하기: 수면 부족, 스트레스, 알코올, 과로
- 안전한 환경 조성: 높은 곳에서의 작업 금지, 물가 활동 제한
- 응급약 상시 구비: 발작 지속 시 사용할 수 있는 응급용 항경련제
- 정신건강 관리: 우울, 불안, 사회적 고립 등 이차적 문제에 대한 지원
정밀한 구분과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한 뇌전증 관리
뇌전증은 단순히 ‘발작이 있다 없다’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질환입니다.
1회성 발작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정밀한 진단 없이는 만성 뇌전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놓칠 수 있습니다. 반면, 난치성 뇌전증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삶의 질을 위협하는 질환이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치료 옵션이 등장하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 시기의 결정, 그리고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치료 전략입니다. 뇌전증이 있다고 해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잘 조절하면 충분히 일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질환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