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과 ADHD의 공존: 중복 진단의 이유, 대처법, 그리고 자폐의 원인에 대한 최신 연구
요즘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진단을 받은 아동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도 함께 받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보호자 입장에서 보면, 이미 하나의 진단으로도 혼란스러운데 두 가지 진단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니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 아이는 두 가지 진단을 함께 받았을까?”
“이런 경우, 치료나 교육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자폐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드리기 위해, 오늘은 다음의 세 가지 주제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1. 자폐와 ADHD의 중복 진단은 왜 증가하고 있을까?
▶ 진단 기준의 변화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진단 기준의 변화입니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판)을 통해 자폐와 ADHD의 공존 진단을 허용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자폐 진단을 받으면 ADHD 진단은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공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진단으로만 설명해야 했죠.
DSM-5 이후에는 양쪽 특성이 명확할 경우 두 진단을 함께 인정할 수 있게 되면서, 진단율 자체가 증가한 것입니다.
▶ 공통된 신경 발달적 기반
자폐와 ADHD는 모두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s)입니다. 즉, 뇌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구조적, 기능적 차이가 발생하면서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두 장애 모두 다음과 같은 뇌 영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두엽(Prefrontal Cortex): 충동 억제, 계획 실행, 주의력 조절을 담당
주의 네트워크(Attention Network): 외부 자극에 집중하고 반응하는 시스템
감각 처리 영역: 외부 자극(소리, 빛, 촉감 등)을 받아들이고 조절
이러한 뇌 기능의 이상은 다음과 같은 행동상의 유사성으로 이어집니다.
자폐 특성 ADHD 특성 겹치는 양상
사회적 신호에 둔감함 충동적 반응으로 또래와 갈등 또래 관계 어려움
변화에 대한 저항 주의력 산만으로 일관된 행동 어려움 규칙 적응의 어려움
특정 주제에 대한 과몰입 집중 지속 어려움 과잉 또는 부족한 집중
감각 예민 또는 둔감 자극 추구 행동 감각 자극에 대한 독특한 반응
따라서 자폐 아동이 ADHD처럼 보일 수 있고, ADHD 아동이 자폐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이들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겹치는 부분을 면밀히 구분할 수 있는 전문가의 관찰과 평가가 필수입니다.
▶ 연구에서 나타나는 공존율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자폐 진단 아동의 30~70%가 ADHD 증상을 함께 보인다고 합니다. 반대로 ADHD 진단을 받은 아동 중에서도 자폐적 특성(사회적 이해 부족, 제한된 관심사 등)을 보이는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는 단지 “진단이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 장애가 뇌 발달의 공통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달적 스펙트럼 상에서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자폐와 ADHD가 공존할 때의 대처법: 통합적 접근이 핵심
두 진단이 함께 있을 때는, 단일 진단보다 더 복합적인 증상과 지원의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폐 또는 ADHD 한 가지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부족합니다.
▶ 진단보다 ‘증상 기반 접근’이 중요
진단명은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입니다.
실제 교육과 치료에서는 “이 아이가 지금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자주 자리를 벗어나고 집중을 못 한다면:
자폐 특성이라면: 환경의 변화나 감각 자극(소리, 조명 등)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자리를 이탈할 수 있음
ADHD 특성이라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지루함을 느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음
이 경우 소리 차단 이어폰, 개인 좌석 배치, 짧은 시간 단위 활동 구성, 보상 시스템을 혼합하여 적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 행동중재와 감각 조절을 동시에
자폐와 ADHD의 공존은 흔히 행동 문제와 감각 민감성이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다중 접근이 필요합니다.
행동중재(BTI): 원하는 행동을 강화하고, 문제 행동을 줄이는 전략. 일관된 보상 체계를 통한 습관 형성이 중요.
인지행동치료(CBT):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대처 전략을 스스로 익히도록 돕는 접근.
감각통합치료(SI Therapy): 감각 자극(소리, 촉각, 시각 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 일상에서 불안이나 과잉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
이 세 가지를 아이의 특성에 맞게 조합해서 적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 부모와 교사의 협업이 필수
부모와 교사, 치료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아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IEP(개별화 교육 계획) 또는 개별 행동계획(BIP)을 통해 학교 환경에서도 아이의 필요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소통을 통해 일관된 양육 전략을 가져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자폐의 원인: 유전, 환경, 신경 발달의 복합적 상호작용
많은 부모가 한 번쯤은 이렇게 묻습니다.
“자폐는 왜 생기는 걸까요?”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자폐는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인성 신경발달 장애입니다.
즉, 다양한 유전적, 환경적, 신경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폐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유전적 요인: 가장 강력한 위험 요소
자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유전입니다.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자폐일 경우, 다른 한 명이 자폐일 확률은 60%입니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30% 수준입니다. 이는 유전이 자폐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다양한 유전자들이 자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CHD8: 뇌 발달과 연관된 유전자
SHANK3, NRXN1: 시냅스 연결을 조절하는 유전자
MECP2: 신경계 발달을 조절하며, 레트증후군과도 관련
이 유전자들 중 일부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자폐적 특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만 유전자 하나로 설명되는 경우는 드물며, 복수 유전자의 상호작용이 일반적입니다.
▶ 환경적 요인: 임신 중 조건과 초기 생애 경험
자폐는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반드시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 환경 요인이 자폐의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모의 고령 임신
임신 중 감염(풍진, 독감 등)
산모의 염증 반응 증가
출산 전후 저산소 상태
조산 또는 저체중 출생
약물 노출(예: 발프로산)
이런 요인들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며, 태아기의 뇌 발달 경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뇌 구조 및 기능의 차이
자폐 아동의 뇌는 일반 아동과 몇 가지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사회적 뇌(Social Brain):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영역이 덜 활성화됨
미러뉴런 시스템: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관여하는 신경 회로의 반응 저하
감각 처리 영역의 과잉 활성: 빛, 소리, 촉감 등에 민감하게 반응
이러한 차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자폐 아동의 감각적 인식과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이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단지 의지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진단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지원’
자폐와 ADHD의 공존은 단지 ‘두 가지 진단’이 겹쳐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이의 발달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이자 단서입니다.
중복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걱정부터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맞춤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진단은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치료는 아이의 특성과 환경을 조화롭게 맞추는 과정입니다.
양육은 아이의 속도와 방식에 맞춰주는 따뜻한 동행입니다.
복잡한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아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함께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여러분의 진심입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어떤 진단이든 충분히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